...
영업소 입구 쪽에서 부산스러운 분위가 밀려온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여지없이 막내가 나타났다.
“오빠, 오빠……,”
요란하고 수다스러운 이 집 막내 여직원 목소리다. 언제부터인가 오빠라고 부르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던 참이다.
“오빠 왔구나.”
내 의향은 아랑곳없이 건너편 소파에 뛰어올라 자리 잡았다.
“언니 말이야. 언니 이쁘지?”
“언니 그래도 한때는 얼굴로나 돈으로나 우리 동네에서 이름나 있었어.”
홍조 띤 볼에 장난기가 잔뜩 묻은 평상시 막내 얼굴 그대로였다. 이 산골에 오기 전에도 두 사람은 같은 마을에 살았었나 보다. 그때도 지금처럼 친자매같이 지내었나 보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 자세를 고쳐앉으며 관심을 보이자, 막내는 신난 목소리로 자랑처럼 이야기했다.
“여기 오기 전 계산동 살 때는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잣집 안주인이었다니까.”
그래서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쉽게 대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나. 하지만 크게 괘념치 않기로 했다. 나이도 한참 누나뻘,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고 생각한 지 오래니까. 그런 그녀가 왜 이런 시골에 왔는지 내심 궁금하기도 했지만, 처음과는 다르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또다시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몸을 파묻자, 막내는 더이상 계속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니, 아니야. 나이 많은 사람이 원래 너그러운 편이잖아. 해서 친엄마가 줄 수 없는 사랑만큼 더 아이들을 사랑해 줄 수도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새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핑크색 고무장갑으로 무장한 그녀가 뚫어뻥으로 막힌 변기를 뚫기 위해 허우적대고, 비 오는 날 학교 교문 앞에서 우산 들고 서 있는 그녀 모습은 어울리지도 않았고 애초에 그런 그림은 그려지지도 않았다. 더 깊게 소파에 파고들면서 감은 눈가 주름이 꿈틀거렸다.
그 날이다.
그날 이후부터 그녀와의 거리가 가까워져 함께 산정호수를 다녀오고, 그 모텔 사건도 일어났던 거야. 비록 회상의 시간시점이 혼란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랬던 게 분명해. 귀티 나는 그 외모도,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할 것 같은 그 온화한 성품도.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그녀야. 아이들 엄마가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어야 더 빛나 보일 그녀야. 그녀에게서 도망친 이유가 거기에 있었어. 그래서 그날 이후로는 전화 한 통도 없이 조금이라도 더 멀리 숨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 그랬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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