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이야기 2...,
...
“나, 많이 아파서 병원에 있어. 퇴원해야 하는데, 병원비가 모자라.”
낮 시간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 속 여자 목소리다. 내가 당황해 그냥 끊어버릴 수 있으리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또 한 번 소리쳤다.
“그래도 넌 능력 되잖아.”
꽤 날카로운 목소리다. 그러나 힘 빠져있는 듯도 한, 전혀 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서 생각지도 않은 말을 들어 당황했다.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와 돈을 요구하다니, 미친 여자가 분명해. 서둘러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전화 받을 당시에는 별 이상한 여자가 이상한 전화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 그 전화 속 목소리와 그 일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통증이 가라앉아 잠들어야 맞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맑아지고 있었다.
이 시골 읍내에서는 보기 드문 미인이다. 그녀의 목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면 어느 귀한 댁에서 귀하게 자란 티가 난다. 기품이 있어 보인다.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그녀를 처음 본 느낌이다. 그녀는 가죽 소파를 닦고 있거나 책장 위 먼지를 털어내고 있거나, 창가 손님용 자리에서 여성잡지를 뒤적이거나, 또 다른 자신의 할 일에만 집중해 있었고 마주치면 가볍게 눈인사만 건넬 뿐, 늘 세상 어떤 것도 포용할 것 같은 마음씨 좋은 누나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거기에 비해 나는 어떤가. 가끔 심심할 때 들려 커피나 축내며 시간을 보내는..., 영업에 전혀 도움 되지않는 민폐고객이었을 뿐이다. 그랬던 그녀가 그런 상황에서 그런 내용으로 전화해온 것은, 그 전화에 당황해한 나는 또 무엇이었을까? 내가 그 전화를 끊어버린 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기 때문일까. 그녀에게서 도망치게 한 것도, 하루 한 명 문 두들길까한 시골읍내의 영업소에 발걸음을 끈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어 두 번 다시 그녀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없게 만든 것은, 그녀도 나도 너무 무료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녀도 나도 너무 외로워서였을까? 아니면 그냥 건강한 남녀에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사건을 두 사람이 겪었을 뿐일까?
그건 아니다. 모두 아니야. 나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본능적 핑계일 뿐이야. 지금 명치에 통증을 느끼고 있는 것도, 겔을 먹고도 잠들지 못하고 더 명료해진 머리로 그 전화 목소리에 집착하고 있는 것도 그것에 대한 대가 곧 하늘이 내리는 천벌이다.
손안에 움켜쥐고 있던 겔 포장지를 침대 아래로 던졌다. 그에게는 쓰레기통까지 기어갈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