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대디, 두번째 이야기
2002 한일 월드컵 응원 함성 속에 탄생한 어설픈 생각
무엇이건 준비하는 과정이 더 좋다.
칼을 갈아 준비하고 거창하게 시작한 일일수록, 막상 그 일이 시작되고 나면 오늘도 역시나 하고 말 것을 말이다.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붕어낚시가 그렇다. 나에게 그렇다기보다는, 요즈음 나에게 그렇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듯싶다.
내일 저녁에 월드컵 4강전이 있는 날이었지만, 서쪽 발코니 세탁기 옆에 세워둔 낚시 가방을 거실로 옮겨왔다. 하지만 아직 지난번 봐 두었던 신포리 갈대숲 포인트로 갈까. 양어장으로 갈까 정하지 못했다. 야생지로 가려면 두 세끼 분의 먹을 것과 함께 낚싯줄, 찌, 봉돌, 바늘까지 모두 갈아야 한다. 지난주 양어장에 다녀온 후, 낚시 가방을 서쪽 발코니 세탁기 옆에 던지듯 세워두고 침대 위에 쓰러져 잠들어, 그 가방 안에는 양어장 중국 붕어 채비로 무장된 장비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낚시 가방 지퍼를 열자, 썩어버린 생선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어분이 상했다. 민물낚시를 해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붕어가 좋아하는 미끼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말린 생선가루가 어분의 주재료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거다. 서산으로 떨어지는 해가 뿜어내는 마지막 열기가 발코니 창을 통해 비집고 들어와, 쓰다 남은 어분을 상하기 좋은 온도로 가열했음이 분명하다. 지난 일주일 내내 말이다.
전봇대 높이 만큼 솟기를 바라며 밤새 찌 불을 바라본 탓만 할 게 아니라, 그냥 침대 위에 쓰러져 잠들 게 아니라 낚시 가방을 열어보고 간단히라도 정리했어야 했다. 아니면 물속에 드리웠던 낚싯대를 거두어들이는 시간을 한 시간이라도 앞으로 당기고, 낚시 도구를 정리하는 시간을 그만큼 더 가져야만 했다.
“왜 그랬을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내 몸이 피곤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변명을 하자면, 혹시라도 허기진 붕어가 지나다 내 미끼를 힘껏 빨아들일 수도 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시간을 보내다 철수 시간이 늦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뭔가 지나갔다. 분명 움직이는 물체였다. 처음엔 처녀 귀신에 홀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내가 달리고 있으니 길옆 물체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야심한 시각에 이 산골길을 홀로 걸어갈 여인은 없을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내 차는 다음 커브를 돌아 키 작은 코스모스 옆을 지나고 있었다. 싱글대디는 본능적으로 녹색으로 깜박이는 디지털 시계를 곁눈질해 확인했다. 그리고 조금 전 눈 앞에 펼쳐진 그림을 다시 한 번 되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되살아난 그림 속에는 하향등이 만들어 내는 밝음과 그림자 곡선이 블라인드 처리한 얼굴의 여인이 지나갔음이 분명해 보였다.
…….중략 …….
쓰고 싶어지면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