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대디

싱글대디, 첫번째 이야기

눈마 2018. 11. 22. 11:18



가을 운동회






책상 한켠에 묵묵히 자리하고 있던 데스크 캘린더가 눈에 들어왔다.


가을 운동회


10월 21일이라고 진하게 인쇄된 곳 여백에 '가을 운동회'라고 적힌 붉은 글씨가 유난히 크게 클로즈업 되었다.


싱글 대디는 들고있던 펜을 농구 선수가 버켓에 농구 공을 던지듯 연필꽂이에 던져 넣고, 의자에서 스프링 처럼 튀어올라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오늘이 가을 운동회야?"


"즐거운 운동회 되길 바래. 딸……, 그리고 막내 너도?"


"점심 시간에 시간 맞춰 아빠가 학교로 갈게. 기다려. 아빠랑 같이 맛있는 점심하자."


아침 출근 시간 그렇게 말하곤 아들,딸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뛰어나왔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학교 점심 시간은 12시 30분부터 13시 30분까지다. 내 직장 점심 시간 보다 30분 늦다. 아직 내 직장 점심 시간은 시작되지도 않았을 시간이었지만, 사무실 부하 직원들이나 다른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는 상사에게도 어디에 무슨일로 간다는 간단 메모조차 남기지 않고 승용차에 올라 아이들 학교로 달려갔다.


학교에서는 운동회 오전 일정이 끝나고 점심 시간이 시작된것 같았으나, 내 눈에 아이들은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화단 근처 잔디밭에서도,

건물 뒤 화장실에서도,

서쪽 나무 그늘이 있는 곳에서도……,


시골 초등학교 교정 여기저기에서 어린 학생들과 그 가족들이 점심을 함께 하려고 돗자리 위에 준비하는 것은 볼 수 있었지만 말이다. 벌써 작은 학교 교정을 세 바퀴나 돌았다. 아빠가 온다고 했으니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조바심이 일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달리기 시작했다. 본관 건물 뒤를 돌아 급식실 모퉁이를 지나갈 때, 나는 제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5미터쯤 앞에 녀,남 두 아이가 손잡고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는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뭐해?"

"엄마 찾아요."


그순간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 맞은 것 같았다.


"엄마를 기다린다니……,"


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험상궂게 일그러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건 나보다도 아이들이 먼저 일 것이다.


"운동회 날 엄마가 오기로 약속했었어요."


그런 내 얼굴을 분명 봤을테지만, 맑은 눈빛으로 남 동생 손을 꼭 잡고 말하는 딸아이가 결코 미워 보이지는 않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이는 눈동자 속에 간절한 그리움을 숨기고 있는것도 같았다.


천진난만한 딸아이의 목소리를 듣게되자,

'그래, 이 나이인 아빠도 어머니가 절실히 그리운 날이 있는데, 어린 너희들이야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겠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엄마와 아이들의 시간을 허락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있는 모습을 보면 전처가 아이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럼 빨리 이자리를 벗어나는게 아이들을 위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그 짧은 시간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의 종착지다.


난 애써 미소지어 보였다.


"그랬구나.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아침에 그런 말을 했었지."

"아빠는 사무실로 돌아간다. 아빠가 많이 바쁘거든……,"


마음 같아선 아이들이 엄마와 만나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전처가 가진 가치관도, 인생관도, 자녀 교육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사람에게 아이들이 오염되는 건, 절대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통 크게 양보하기로 했다. 학교 뒷문 앞 도로에 아무렇게나 세워둔 자동차로 돌아 오는 길에서 "과연 이게 올바른 일인가.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좋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싱글대디는 순수 창작물입니다.